📌 목차
- "빵 아니면 죽음을!"…프랑스의 분노
- 미국 개척 시대, 랍스터는 빈곤의 음식이었다
- 너무 흔해서 버리던 바닷가재
- 고급 식재료로 탈바꿈한 이유
- 유럽은 원래부터 랍스터 마니아
- 랍스터, 알고 보면 건강에도 좋은 슈퍼푸드
- 가재가 용 된 랍스터의 역사적 반전
1. "빵 아니면 죽음을!"…프랑스의 분노
프랑스 혁명 당시, 배고픔에 시달리던 민중은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며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왕실의 반응은 민심을 더욱 자극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그럼 케이크를 먹으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전해집니다. (정확히는 루이 15세의 딸이 했다는 설도 있지만요.) 이 말 한마디는 무심한 귀족 계층의 상징이 되었고, 수세기 동안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2. 미국 개척 시대, 랍스터는 빈곤의 음식이었다
비슷한 이야기는 미국 초기 이민사회에서도 등장합니다. 1600년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도착한 청교도들은 낯선 땅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도 먹을 빵이 귀했습니다. 이들에게 농장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따뜻한 빵 대신, 줄 수 있는 건 바닷가재와 물 한 잔뿐입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 랍스터는 '싸구려 음식'이었습니다. 너무 흔해서 노예나 가난한 하인, 심지어 감옥의 죄수들에게나 주는 식사였죠.
3. 너무 흔해서 버리던 바닷가재
초기 미국 동부, 특히 매사추세츠와 메인주 근해에는 랍스터가 넘쳐났습니다. 흔한 만큼 무시받았습니다. 원주민들은 랍스터를 식용보다는 비료나 낚싯바늘 재료로 더 많이 활용했습니다. 하인들은 "랍스터를 너무 자주 먹게 하지 말라"는 조건으로 계약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금지였죠.
4. 고급 식재료로 탈바꿈한 이유
이러한 '천덕꾸러기'였던 랍스터가 고급 요리로 바뀐 건 19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입니다. 교통과 유통망이 개선되면서 랍스터가 내륙으로 퍼졌고, 도시의 부유층 사이에서 이국적인 별미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메인주는 1840년대 랍스터 산업이 본격화되면서 '랍스터의 고향'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5. 유럽은 원래부터 랍스터 마니아
유럽에서는 이미 고대부터 랍스터가 귀한 식재료였습니다. 고대 로마의 요리책에도 랍스터 조리법과 곁들일 와인이 소개돼 있었고, 중세 이후 영국과 이탈리아 등에서도 관련 문헌이 여럿 발견됩니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랍스터를 정력제 또는 사랑의 묘약처럼 여기기도 했습니다. 성적 매력과 체력을 높여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6. 랍스터, 알고 보면 건강에도 좋은 슈퍼푸드
한의학에서도 랍스터는 허약한 체질을 개선하고 열을 내려주는 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서늘한 성질로 나쁜 기운을 내보내고 신장의 균형을 돕는다고 하죠.
영양학적으로도 랍스터는 저칼로리에 고단백, 미네랄과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합니다. 키토산 성분은 뼈와 근육 발달을 돕고, 랍스터 알에 포함된 핵산은 노화 방지에도 효과적이라 여성의 피부미용에도 좋은 식재료입니다.
7. 가재가 용 된 랍스터의 역사적 반전
한자로 랍스터를 ‘용새우(龍蝦)’라 부릅니다. 새우와 가재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의미입니다.
한때 미국에서는 ‘빈곤의 상징’이었던 랍스터는 이제 고급 레스토랑의 대표 요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야말로 ‘가재가 용이 된’ 음식인 셈이죠. 시대가 바뀌면 음식의 가치도, 상징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