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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경에 가면 꼭 먹어야 할 음식, 북경오리구이의 모든 것

by 식섭 2025. 6. 25.

북경오리구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닙니다.
수백 년의 역사, 황실의 미식 문화, 유럽과 아시아의 음식 교류가 만들어낸 상징적인 요리입니다. 북경에 간다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명물 중의 명물이지요!

 

📌 목차

  1. 북경오리와 전설 같은 속담
  2. 황제도 반한 북경오리의 위상
  3. 중국인들이 오리를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
  4. 북경오리구이의 정통 먹는 법
  5. 두 가지 방식의 전통 오리 굽기
  6. 북경오리 전용 오리의 특별한 사육 과정
  7. 유럽에서 온 맛의 뿌리? 북경오리의 기원
  8. 남경에서 북경으로, 오리구이의 역사적 이동
  9. 청나라 시대의 전성기와 황실의 사랑

1. 🐉 북경에 가면 오리를 먹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다?

중국에는 유명한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북경에 가서 만리장성을 보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고, 북경오리를 먹지 않으면 평생 후회한다.”

그만큼 북경오리구이는 북경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음식입니다.


2. 👑 황제도 반했던 음식, 북경오리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미식가 중 한 명이 바로 청나라의 건륭제입니다. 그는 13일 중 8일 이상 북경오리구이를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데요, 수많은 진귀한 요리를 맛보았을 황제가 꾸준히 오리구이를 즐겼다는 것은 그 풍미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줍니다.


3. 🦆 중국에서 오리는 닭보다 귀하다?

우리나라에선 닭고기를 더 흔하게 먹지만, 중국에서는 오리고기가 더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오리'를 뜻하는 한자 '압(鴨)'을 분석해 보면 '새(鳥)' 중에서도 '갑(甲)', 즉 최고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인들이 오리고기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4. 🍽 북경오리 제대로 먹는 방법

정통 북경오리구이는 몇 단계를 거쳐 즐깁니다.

  1. 바삭하게 구워진 껍질을 밀전병에 얹고, 생파와 오이채, 달콤한 장을 함께 싸 먹습니다.
  2. 이어서 얇게 썬 살코기를 맛보고,
  3. 마지막으로 오리 뼈를 우려낸 진한 국물과 내장 볶음 요리까지 즐깁니다.
    가끔 오리 혀나 물갈퀴 요리가 곁들여지는 경우도 있답니다.

 

5. 🔥 오리 굽는 전통 방식은 두 가지

북경오리구이에는 두 가지 대표적인 굽기 방식이 있습니다.

  • 취안쥐더 방식: 오리를 갈고리에 걸고 직접 장작불에 굽는 직화 방식
  • 편의방 방식: 화덕 속에 넣어 간접적으로 익히는 방식 (원래 남경에서 발달)

각 방식은 불 조절과 온도 유지에 차이가 있어, 맛과 식감에서도 독특한 차이를 냅니다.


6. 🚫 오리도 특별 사육된다… 하지만 잔인한 과정

북경오리 전용으로 개량된 오리는 일반 오리와 사육법부터 다릅니다.

  • 부화 후 약 50일이 지나면 운동을 제한하고
  • 하루 3번, 입을 강제로 벌려 사료를 가득 먹입니다.
  • 도축 전, 공기를 불어넣어 껍질과 지방층을 분리하여 껍질이 쭈글해지지 않게 합니다.
  • 내장을 제거한 뒤 맥아당을 발라 그늘에서 말리고
  • 마지막으로 장작불에 천천히 구워 껍질을 바삭하게 만듭니다.

이 과정은 프랑스의 푸아그라를 만드는 방식과 유사하죠.


7. 🌍 북경오리의 기원은 유럽?

사실 북경오리구이의 뿌리는 유럽에서 먹던 거위 요리라는 설도 있습니다.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 요리가 중국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며, 마르코 폴로 같은 상인들에 의해 유입되었다는 주장도 있죠.

하지만 중국에서는 훨씬 더 오래전부터 오리를 요리한 기록이 존재합니다.


8. 🏯 항저우에서 북경까지, 오리구이의 여정

남송 시절, 항저우에서는 이미 '자압(煮鴨)', 즉 오리구이가 유행했습니다. 이후 원나라 건국 후, 몽골족은 많은 장인을 북경으로 데려가는데, 이때 오리요리 장인들도 포함되어 북경으로 기술이 전해졌습니다.

 

 

 

 

 

 

 

9. 🏰 북경으로 온 남경의 화덕 오리

명나라 초기에 수도는 남경이었으며, 이곳에서는 진흙을 바른 오리를 불 속에서 굽는 방식이 유행했습니다. 이 방식의 유래는 한 거지가 오리를 몰래 구워 먹다가 발각될까 봐 진흙을 발라 불 속에 숨겼다는 일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수도가 북경으로 옮겨지면서 이 화덕 방식도 북경에 도입되었고, 청나라에 들어서면서 황실의 후원 아래 북경오리구이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특히 건륭제와 서태후가 이 요리에 매료되었다고 전해집니다.